독후 감상문)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본문 바로가기

방구석 책

독후 감상문)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728x90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저자 줄리언 반스에 대하여

1946년 1월 9일 영국 중부 레스터에서 태어난 영국의 대표작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현대 언어를 공부했고, 1969년에서 72년까지 「 옥스퍼드 영어 사전」 증보판을 편찬했다.

 

1980년 출간된 첫 장편소설 「메트로랜드 」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태양을 바라보며 」,「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내 말 좀 들어봐 」,「 고슴도치」,「 아서와 조지」,「잉글랜드, 잉글랜드 」,「사랑 그리고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등 11권의 장편 소설과 「 레몬 테이블」,「크로스 채널 」,「맥박 」등 3권의 소설집, 에세이 등을 펴냈다. 1980년대 초에는 댄 캐바나라는 필명으로 4권의 범죄소설을 쓰기도 했다.

 

1980년「플로베르의 앵무새 」로 영국 소설가로서는 유일하게 프랑스 메디치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미국 문예 아카데미의  E.M. 포스터 상, 1987년 독일 구텐베르크 상, 198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부르상, 1992년 프랑스 페미나상 등을 받았으며, 1993년 독일의 FVS 재단의 셰익스피어상, 그리고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 국가 대상 등을 수상하며 유럽 대부분의 문학상을 석권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이례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1988년 슈발리에 문예 훈장, 1995년 오피시에 문예 훈장, 2004년 코망되르 문예 훈장을 받았다.

 

2011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는데, 수여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여론이 지배적일 정도로 영국 문단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공고하고 높다.

 


저자의 화려한 수상 경력 때문이 아니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난, 시중에 나와 있는 줄리언 반스의 모든 책을 검색하고 여러 권 주문했다.

그 정도로 그의 책은 내 마음과 온 정신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 」로 수상했던 바로 그 상, 맨 부커상 수상작이다.

개인적으로 한강의 「소년이 온다 」는 너무나 아끼는 작품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독후 감상문

 

 

우선 스토리 구성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과거, 정확히 고교시절과 대학 시절의 회상이며, 2부는 노년인 토니가 40년 넘게 모르고 있었던 진실을 한 겹씩 벗기면서 맞게 되는 심경 변화와 회한이 주로 그려진다.

 

두 번 읽었지만 뚜렷하게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이 책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건지.

물론 일어나는 사건들이 흥미롭고, 탐정의 오감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마음가짐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있다. 하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왜 찜찜한 건지, 도대체 어디서 길을 잃은 건지.

 

그래서 에이드리언이 왜 죽은 건데~? 

의혹만 커진다.

그 이유를 안다면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거겠지. 하지만 모르겠다.

단지 확실한 건, 토니의 그 쓰레기 같은 편지가 원인은 아니라는 것.

 

2부를 먼저 살펴보면서 1부를 이야기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혼했지만 여전히 전처와 친구처럼 지내고 딸 수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퇴직 후 좋아하는 일도 있고 저녁엔 맥주 한 잔 함께 마실 친구도 몇 명 있는 비교적 삶을 평범하지만 안정적으로 잘 이끌고 온 토니(앤서니 웹 스턴)는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40년 전 사귀었던 첫사랑의 어머니, 사라가 죽으면서 남긴 유산 -약간의 돈과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수령하라는 법률회사의 편지.

여기서부터 토니의 평안한 삶은 조금씩 균열이 간다.

전 여자 친구의 어머니의 유산이라, 벌써 수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가.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왜 그녀의 딸, 베로니카가 아닌 그녀의 엄마인 사라가 지니고 있었을까 -베로니카는 토니와 헤어진 후 에이드리언과 사귀기로 했고, 그 후 얼마 후 에이드리언은 자살했다.

 

베로니카가 일기장을 가져간 후, 토니에게 돌려주지 않는 바람에, 토니는 끈질기게 이메일로 회유와 협박을 일삼는다.

그리고 결국 40년 만에 재회하게 된 토니와 베로니카.

도도하고, 이쁘고, 까다롭던 상류층 아가씨 베로니카는 의외로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홀연히 예나 지금이나 감도 못 잡는 토니를 남겨 두고 떠나간다.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과 늙어서도 알듯 말 듯 여전히 모호한 매력을 지닌 베로니카에게 옛 감정을 떠올리는 토니는 다시 한번 베로니카를 만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마냥 기분이 들떠있던 토니는 베로니카로부터 편지 복사본 한 통을 건네받는다.

자신의 필체였다. 친구 에이드리언에게 쓴 장문의 편지였다. 지금껏 잊고 지내다, 지금 막 기억해 낸 편지였다.

하지만 보낸 기억은 없는, 오히려 그가 보낸 건, 쿨 하게 베로니카와 잘 사귀라고 축하 해준 엽서 한 장이였다.

그런데, 이토록 수준이 떨어지는, 질투에 눈이 멀어 온갖 저주와 저급한 말을 마구 쏟아 낸 이 쓰레기 같은 글을 그에게 보냈다니.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자살이 자신의 편지 때문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과오에 대해 깊은 회한을 느낀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베로니카에게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다시 만난 베로니카.

그녀는 토니를 한 청년에게 데려간다. 그 청년은 발달이 느려 보호사들의 보호를 받는 대상이었고, 베로니카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넌 감도 못 잡는구나.’ 라며 화만 낸다.

토니는 그 청년이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 사이의 아이일 거라 확신하며, 그 청년에게 친밀함을 느낀다.

하지만,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 있는 진실이 기다린다.

그 청년은 베로니카의 조카였다. 그녀의 엄마, 사라의 아이였던 것.

 

이게 뭐야. 마지막 장에서 길을 잃었다. 다시 첫 장으로 갈 수밖에.

알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생겼다.

첫째,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 넌 감도 못 잡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도대체 무슨 감~?

둘째, 죽기 전에 에이드리언이 행복했었다는데 왜 죽었을까?

 

이 궁금증에 대한 단서들은 1장에서 찾아봐야 할 듯하다.

토니가 미리 말했지만 1장의 회상 부분은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전적으로 토니의 기억의 파편들에 의존한다.

역사는 쓰여지는 그 순간부터 역사가의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듯이, 1부에서의 토니와 그들의 역사는 오롯이 토니의 시선으로 인식되고, 감각되는 부정확하고, 불충분한 문서임을 감안하고 읽어 보자.

천천히, 혹은 문장 하나하나를 읽을수록 난, 왜 토니의 열등감이 팝 업 되는지 모르겠다.

에이드리언의 남다른 천재성과 해박한 지식에 경탄하지만, 동시에 질투하는 것이 행간에서 느껴지고, 베로니카의 보여지는 부분(신분 차, 계급 차)의 근사함, 우월함에 살짝 주눅 들어, 피해의식을 지니게 되는 소심한 토니가 보였다. 토니가 베로니카를 사랑하긴 했나 의심까지 들 지경이었지만, 자기 보호 본능이 강한 토니의 비겁한 사랑쯤으로 정리하고 싶다.

반면, 베로니카는 둘이 만나던 그 시절, 토니를 사랑했고, 40년의 시간 동안 그 사랑의 그림자 안에서 살았다고 생각되어진다. 물론 오래전에, 토니에 대한 사랑은 식었을지라도.

그렇지 않다면, ‘넌 감도 못 잡는다.’는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할 건가.

 

에이드리언의 자살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 에이드리언이 동급생 롭슨의 자살에 대해 까뮈의 말을 인용했듯, 그의 자살은 단 하나의 진실된 철학적 문제, 즉 모든 게 걸린 문제였던 것이다.

그가 죽은 원인은 에이드리언 본인만 알 수 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추측할 뿐이다. 에이드리언, 즉 사건 당사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감조차 못 잡을 수 있다. 진실은 에이드리언이 죽었다는 그 사실뿐인 것이다. 죽은 에이드리언이 다시 살아나 왜 자신이 죽었는지 말해주지 않는 한 아무도 그가 자살한 진짜 이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토니의 회상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사건이 정확히 그러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순간의 느낌, 불쾌했던, 주눅 들었던, 예를 들자면 그러한 느낌들, 감각들은 정확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순전히 근거 없이 토니의 자기 보호 본능으로 작동된 지극히 주관적 느낌이라는 함정은 있지만.

 

결국엔 토니라는 한 개인의 불확실한 시간들 속에 담긴 서사의 진실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거대한 시간의 화석인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토니라는 1인칭 화자가 풀어내는 개인의 서사가 불확실성과 불충분함을 잉태한 채, 지극히 개인적 감정을 기반으로 과거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듯, 역사 또한 역사가가 기술하는 그 순간부터 역사가의 해석이 개입되어,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 우리가 기억하는 확신이 되었을 뿐이다.

진실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에이드리언이 죽었다는 그 사실만이 진실이다.

 

따라서, 역사는, 우리가 읽고 배우고 습득하는 역사 이론은 진위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실은 우리가 예감할 수 없는 것이니까. 진실은 예감이 아니라, 사건 그 자체이니까. 사건 당사자들은 죽어 말이 없으니까.

우리가 예감조차 할 수 없는 진실이 역사라고 줄리언 반스는 에둘러, 하지만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진실을 짐작도 못할 거라는 바로 그 예감이 틀리지 않는 것이라고 깨닫게 해 주려는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이 비밀스러운 진실을 알려주는 방법은 난해했던 것 같다. 지금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자꾸 정리하면서 쓰게 된다. 진지한 말장난을 하는 기분이다. 물론, 말장난이 아니지만.

 

책장을 두 번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 본 이 책에 대한 나의 결론은 이것이다.

작가 줄리언 반스가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건,

진실(역사적 진실)은 예감조차 할 수 없다는 것. 단지 실제 일어났었던 사건 그 자체만이 진실하다는 것. 그리고 진실(역사적 사실)을 감도 잡지 못할 것이라는 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것.

의미를 이해하기 쉽진 않았지만, 그리고 이런 결말이 작가의 의도와 다를지언정 이 책을 읽은 나의 감상은 그러하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