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로 소중한 인연이다. 그녀는.
그런데, 너무도 안 맞는 사람이다.
좋았던 기억만큼이나 끔찍한 기억도 많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부딪힘도 많다.
그때마다 감정의 기복은 극과 극으로 치닫는다.
같은 공간을 쓰는데 생활 방식이 다르니,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
집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편안한 곳이 아닌 스트레스를 주는 공간이 되었다.
퇴근했을 때 집 안에 가득 밴 음식 냄새는 내 취향이 아니다.
일을 많이 하셔도 뒷마무리가 안되어 있는 그녀의 습관은 나를 잔소리쟁이로 만든다.
말없이 치우다가도 그런 내 모습을 또 잔소리하는 그녀와 결국엔 부정적인 대화로 서로의 감정을 할퀸다,.
세월 앞에 장사없다고 오랜 세월 내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그녀는 이젠 내가 보살펴야 할 사람이 되었다.
자식들 제대로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살았던 팔십 평생은 그녀를 각종 만성질환자로 만들었다.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버린 난 그녀의 식생활, 운동, 생활 방식 등등에 대해 코치해 주고 점검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못할 때부터 젖을 물리고 똥기저귀 갈아가며, 온 신경을 다해 키운, 아직도 어린 새처럼 못 미더운 그런 딸이 자신을 챙긴다며 이래라저래라 해대니, 그녀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독립적인 사람이고, 여태껏 그렇게 살아온 강인한 사람이다.
현역에서 은퇴했어도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 수 있을만큼 열심히 사셨고 지혜롭게 노후대비 하신 분이다.
그것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
내게 의지하면서도 의지하는 게 싫은 모양이다.
각자 따로 살자고 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호의적이지도 않다.
내가 하는 말, 행동들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러실까?
아마도 그녀의 성향과 내 성향, 그녀의 취향과 내 취향, 그녀의 가치관과 내 가치관...
그런 것들이 너무 달라서 인 것 같다.
가만히 살펴 본 바로는 그녀는 자식들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는 것 같다. 아니, 흡족해하지 않는다. 그건 그녀와의 대화에서 분명히 밝혔던 부분이다.
그만큼 뒷바라지 해줬는데 자리를 못 잡은 것에 대해 원망하셨다. 그녀는 자식에 대한 욕심이 많은 분은 아니다.
그저 안정적으로 살아가길 바랄 뿐.
그런데 자식들은 안정보다는 모험을, 예술을 좋아했다.
그녀 눈엔 헛된 꿈일 뿐이었을 것이다. 가족들 건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그녀에겐 그건 모래 위에 쌓는 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들 몇을 바보라고 하며 한탄한다.
그만큼 그들에 대한 걱정으로 애가 타는 것일 터.
그렇게 그녀에게 바보인 나이기에 내 말은 먹히질 않는다.
그러니 난 그녀에게 고집이 세다고 막말을 하고, 세월 때문에 약해진 그녀는 삐져서 뭘 하자고 해도 싫다를 연발한다.
아주 애가 탄다.
변수가 없는 한 그녀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운명인 우린, 어떻게 하면 서로 다치지 않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서로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백퍼 지키기가 힘들고 이프로 못 지켜서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함께 어딜 가기로 하고 채비를 하는데, 안색이 안좋아서 어디 아프냐고 물었는데 예민하게 대답하셨다.
자주 그런 반응이셔서(그녀도 날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픈 게 아니면 표정을 좀 펴시는 게 어떠시냐 했다가, 이런 말 저런 말 몇 마디 주고받다 감정이 상했는지 자신은 안 가겠다고 하신다.
한 두 번 있던 일도 아니고, 그 말을 들은 난 아무 말 안하고 그냥 혼자 나와 버렸다.
그녀가 독특한 면이 있긴 하다. 아마 나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도 그녀도 사람의 도리나 삶의 도리는 잘 알고 지키고 살려 노력하는 인간들인지라, 우린 서로를 저버리지도 않을 것이며,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다.
알고 있다. 그리고 매일 보고 있다.
그녀가 성숙이 아니라 퇴화하는 것을. 늙음이란 그토록 짠한 것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를 통해.
나도 인지부조화가 일어 나는 것이다.
다정한 성격은 아니지만, 강인하고 커다란 나무처럼 의지가 되었던 그녀를 이젠 내가 조금씩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금방 적응되는 건 아니었다.
아마도 그런 나의 불안감과 무거운 마음이 그녀에게 불편한 감정으로 전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민한 그녀는 자존심도 상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면서 자신도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노쇠해지는 그녀와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나)에서 그래도 마음을 더 넓게 갖고 양보하고 이해해야 하는 건 나인 것 같다.
나도 약자이지만, 그녀가 더 약자이니까.
그녀의 몸(건강)도 중요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더 돌보아 드려야겠다.
건강 수치에 너무 촛점을 맞추다 그녀가 정신적 스트레스로 더 힘들어질 것 같다,
그녀가 불편해할 것 같은 말은 가능한 하지 말고, 그녀의 자신감을 상승시켜 줄 말을 가능한 많이 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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